개헌이 답이 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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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전국법과대학교수회 회장
서울신문 2017. 1. 10.
정유년 새해, 우리 공동체의 중요한 정치적 화두는 대선과 개헌, 이 두 가지가 될 것으로 보이다. 물론 관점에 따라 중요도는 다를 수 있다. 운용하는 사람이 문제이지, 제도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회의적 입장에서 개헌은 부수적인 일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사람을 믿을 수 없기에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견해에서는 공동체의 핵심가치와 규범을 담아내는 개헌은 백년대계로서 매우 중요할 것이다.
개헌을 지지하는 사람 중의 한명으로서 걱정되는 것은 지금의 국회 개헌특위를 중심으로 논의되는 내용이 대통령제냐 내각제이냐, 현행처럼 대통령제일 경우 중임을 허용할 것인지 여부 등 권력구조 개편에서 그치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소위 원 포인트 개헌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업그레이드 되기 위해 필요한 건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 헌법 조문에는 권력구조보다 더 중요하지만, 간과되고 있는 시대에 뒤처진 내용들이 드물지 않다. 예컨대, 국방의 의무를 명시하고 있는 우리 헌법 제39조 제2항은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라고 하고 있다. 얼핏 보면 상식 같지만, 자세히 보면 웃기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럼 병역의무를 이행한데 대하여 국가가 불이익한 처우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 하나. 당연히 이 규정은 병역의무 이행자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 책무 규정으로 바뀌어야 한다.
청원권에 관하여도 헌법 제26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지고, 국가는 청원에 대한 심사의무를 진다”고 하고 있다. 그럼 이 규정이 없으면 청원을 하지 못하는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 규정이 굳이 있어야만 청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 규정에 의한 하위법으로 청원법과 입법청원의 경우 국회법이 있으나 사실상 국민의 기본권 보장으로 실효성은 의문이다. 따라서 예산이 부수되거나 소급입법, 형사처벌과 재판개입 등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는 제외하는 식으로 포퓰리즘적 입법은 예방하되, 국민의 입법 요구권을 보다 구체화하는 근거조항을 헌법에 둘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의 청렴의무를 규정해 둔 헌법 제46조, 겸직금지를 선언하고 있는 제43조 역시 추상적이어서 실효성이 의문이므로 피선거권 내지 연금 박탈과 같은 헌법상 제재의 근거를 보완해 둘 필요가 있다. 재판의 심리와 판결을 공개하도록 되어 있는 헌법 제109조도 언제부터인가 법원이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사생활과 무관한 형사사건에서도 피고인의 이름을 지워버리고 있다. 이로 인해 파렴치한 범죄로 공동체에 위해를 가한 자들이 누구였는지 국민과 역사의 심판에서 비껴나고 있다. 차제에 확정된 형사유죄판결의 경우만이라도 피고인의 실명이 공개된 판결문에 나오도록 해야 한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담임권을 가진다”는 헌법 제25조 역시 국민의 정체성과 관련 있는 기본권인 공무담임권 보장으로서는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갈수록 보이지 않는 유리천정, 특히 중요 공직의 공채에서 주관적, 정성적 부분의 비중이 많아지는 현실에서 불투명과 불공정성을 방지하기 위하여 "학력 등에 의한 차별 금지, 국가의 기회균등 의무"가 추가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든 것은 헌법 130개 조문 중 개정이 시급해 보이는 몇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이들은 어찌 보면 국민의 기본권 신장과 정치의 투명성과 참여를 위해서 더 긴요한 과제들이다. 광장민심의 본질은 권력구조 개편을 넘어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정치적, 경제적 삶의 수준을 한 단계 상승 시키는데 있다.
원 포인트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만을 시도한다면 여의도 기득권 세력의 과두정적 담합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정파적 이해관계로 인해 권력구조 부분 논의가 진척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뺀 나머지 가능한 부분들을 차제에 다뤄야 한다. 개헌이 권력담합이 아닌 국가와 국민을 위한 진정성 있는 고민의 발로임을 보여주기 바란다.